서울예술대학에 다니다 보니까 가끔 심심하면 학생들이 올리는 공연을 봅니다. 복학 전에는 별로 관심 가지지 않던 분야였는데 요즘 들어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아마 졸업한 동기랑 같이 봤던 연극 <사건발생 1980>이 계기가 되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서울예대 출신인 극작가 김한길이 연출한 창작극이었어요. 무엇보다 무대 활용 방법을 눈여겨 봤는데, 왜냐하면 제한된 공간 안에서의 '문'과 소리나 시각을 활용한 효과가 어떻게 쓰이는가 하는 점이었지요. 대사는 지루함을 덜기 위해 입담이 넘쳐야 하고(아마도 이 때문에 연습 도중 중간중간 대사를 고치는 일이 잦을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변화 또한 오로지 무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재미있었어요. 작품보다는 형식 자체를 눈여겨 보았지요. 그리고 돈도 없고 전공 분야도 아니라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방학 직후라 연기과·연극과 학생들의 기말공연이 최근 많더군요. 덕분에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두 편은 볼 수 있었습니다. 관람료도 없고 연출력도 괜찮으니 참으로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더라고요. 뮤지컬 <해롤드와 모드>와 아서 밀러 원작의 연극 <시련>을 보았습니다. 이 중 <시련>은 <세일럼의 마녀들>이라는 다른 번역제로 국내 이데아총서로 나왔던 것을 구입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것을 모르고 관람하다가 도중 알아차렸지요. 비록 주인공 존 프락터 역할을 맡은 배우가 엉망진창인 발음을 보여주었지만 원작 자체의 몰입도가 워낙 엄청나서 까무라칠 뻔했어요. 7월 4일까지 공연한다고 하니까 다른 캐스팅으로 다시 한번 관람해야겠어요. 어차피 가까운 곳에서 하니까 시간 내서 찾아가면 그만이에요.
그리고 <해롤드와 모드> 역시 재미있습니다. 공연 보는 재미도 있지만 어느 배우가 재능 있는지도 확인하는 즐거움도 커요. 어차피 기말공연답게 학생 전부가 참여하는 만큼 중간중간 어설프기 짝이 없는 배우가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이들은 극의 몰입도를 무너뜨리기 위해 출현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지요. 브레히트의 서사극에 나타난 소격 효과라도 설파하고자 하는 듯이. 비록 이름도 모르지만 언젠가 좋은 연기를 보여준 학생들이 TV나 연극 무대에서 또 만나볼 수 있다면 참 반가울 것 같아요.
이 두 편의 공연을 어떤 형과 함께 봤습니다. 물론 이 형은 연극과나 극작과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다른 과 학생이지만 어째서인지 동아리에서 연출과 희곡을 맡고 있더군요. 물론 저는 그걸 모르고 복학해서 알았습니다만 둘 다 익명의 자전거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곳저곳 같이 다닐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둘 다 위장이 넓어서 싸고 많이 주는 기숙사 식당에서 주로 함께 밥을 먹고는 하지요.
안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즐겁습니다.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 있고 신도시 쪽으로 내려오면 오가는 사람들도 적어서 바람 쐬기 적당합니다. 심지어 공원도 넘칠 듯이 많아요. 조금만 아래로 내려오면 시화공단이라는 극단의 배경이 펼쳐지지만 그곳만 진입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눈과 귀가 아프지는 않습니다. 아, 물론 학교 근처는 빼야지요. 이곳은 지옥입니다.
영화 <해롤드와 모드>를 감상하고 아서 밀러의 희곡도 읽어봐야겠어요. 영상으로 기록된 연극이 많으면 교내 예술정보센터에서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요즘은 시집을 읽고 있는데 도통 눈에 안 들어오네요. 오늘은 막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를 옷을 벗어던지듯이 훌러덩 읽어버렸습니다. 비천하기 짝이 없는 연인들.